직관과 지혜가 만나는 창조인문학...#112
우리는 자연의 신성함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가! 자연을 훼손하는 특별한 종(種) 인간.
자연에서 느껴야할 창조성을 인지못하는 현실이 점점 우리주변과 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1만년 걸려 형성된 열대우림을 한순간에 파괴하는 인간의 창조는 사람과 자연의 균형을 잃게한다.
이스라엘 유태인 지혜의 영성인 창조성을 우리는 성서속의 창조주와 자연에서 찾아야한다. 후손을 위해 정의와 자비로써 창의와 인성을 쌓을 일이다.
마음속 생각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창의에 시작이다. 창조는 어디에서 오는가?
해가 뜨고 지는 데서 온다고 믿는 샤머니즘의 지혜에서 살아있는 유기체 우주가 끊임없이 생성해내는 현대 우주론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창조는 늘 우리주변에 살아 움직인다. 일상에서 찾을 일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직관이라는 것이 성령에서 시작되어 작동하고 도구화되어 인간사고에 관여한다고 말했다. 창조성이란 것은 성령과 교감한다. 빠르게 흐르는 강물과 같이 스며들어왔다가 나간다.
아이들은 창조를 할때 시계를 보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흐름을 사고와 행동을 맡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흐르는 시간보다 더 큰 창조의 생성 가치가 있기 때문이며 누군가 주변에서 통제하지 않는다면 곧 기쁨을 만들어낸다.
중용에서 말하는 천명에 머무르는 인간본성 그 안에 행이 있어 창조가 만들어진다.
순수하고 야생적인 것과 끊임없이 생존을 생각하는 경계선에서 성장한다.
칼융은 어머니의 모성에서 창조성이 있다고 했다. 성평등의 언어를 가져야하는 이유이며 여성들을 통제와 복종으로 이끌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틴어의 크레아티오는 여성명사로 되어있다.
이제 미래의 리더를 키우기 위한 가정과 학교에서 부모와 여성교사들이 교육의 현장과 일상의 가정에서
타고난 창조성을 발현해야한다. 하나님은 창조의 지혜를 She로 표현했다.
유태인들의 지혜의 원천과 흐름의 전통은 모계에 있다. 그 여성의 지혜가 창조작업에서 나온다.
전세계가 빠르기 변화하는 세상에 사람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교육의 위기를 맞이했다.
창조주의 선물인 직관적 마음을 뒤로하고 충직한 하인 이성적 마음만을 중시하여
보이지않은 것의 믿음이 없어지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야 하는 도마가 되었다.
직관이란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현재교육에선 찾을 길 없다.
여성성의 창조활동을 버리는 것은 미래에 필요한 지혜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교육을 통해 성장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며 이내 곧 지구도 죽어간다.
나눔의 공동 가치는 지능을 동반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이성적인 것을 너무 과대평가 말라.
미래의 진정한 부는 건강, 교육, 가족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경제시스템을 만들고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해 내는 창조(크레아티오)에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일과 역할 시스템을 만들어야하고 자기일에 수동적이면 안된다. 무기력과 무감동에 앓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타인의 창조를 바라보고만 있는 청년들이 늘어난다.
지혜와 직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배움의 뜻을 세우고 때때로 습(習)하여 일상가운데 내가 습득한 지(知)를 무엇에 결합할 것인기 정리해야한다. 삶의 본질에 목말라하고 지속가능한 가치에 야성을 갖게된다면 청소년들은 경계에 설것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와 관계성에서 곧 경이로움을 느낄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스스로 할일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그것이 창조로 생성되는 지혜로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면 배움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장태규 창의인문코치